서남아시아/'2023.01-스리랑카

여긴 오픈런이 진리-시기리야 락 Sigiriya Rock 고대도시

이치핏 2024. 5. 8. 02:54

 
다음날 아침.
 
남편이 5시부터
일어나라고 들들 볶아댔다.
 
아침에 시기리야 락을 보고
조식을 먹은 후 담불라를 거쳐
캔디로 넘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시기리야는 스리랑카 필수 관광지라
관광객이 엄청 몰린다.
 
고로 이런데는 오픈런이 진리다.
 
오픈시간이 아침 7시라
10분전에 매표소로 갔다.
 
오픈 시간이 되지 않아도
티켓도 살 수 있고 입장도 가능했다. 
 

 
외국인 입장료는
30달러(23년 기준)
 
지금 이글을 쓰는 24년도는
36달러로 올랐다고 한다.
 
바위 하나 보러가는데
이 가격이 웬말인가 싶지만
생각 보다 규모가 상당한 유적지였다.
 
시기리야 락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고대도시의 흔적들이 펼쳐져 있는데
제대로 볼려면 한나절 잡아야지 싶다. 
 

 
아 힘들어.
 
바위까지 올라가는 길도 계단의 연속이다.
 
평소 운동부족에
저질체력인 나는 벌써부터 지친다.
 
도대체 왜 이렇게 높은데다
도시와 성을 지었냐.
 
것도 나름 사연이 있었다. 
 
5세기 무렵
아누라다푸라 왕국의 왕에게는
두명의 왕자가 있었다.
 
장남은 어머니가 신분이 낮은 서자고
차남은 어머니가 공주 출신이라
차남이 유력한 왕위 계승자였다.
 
그런데 장남이 그 꼴을 못보겠는지
쿠데타를 일으켜
어찌하다 아버지인 왕을 죽이고
차남은 인도로 망명을 했다.
 
왕이 된 장남은 정통성도 없고
아버지도 죽인 죄도 있고 
입지가 불안정했다.
 
늘 불안증에 시달리다
수도를 시기리야로 옮겨
바위 꼭대기에다 궁전과 요새를 지었다.
 
그러다 차남인 동생이
인도에서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 왔는데
그만 전쟁에서 지고 말았다.
 
왕은 결국 자살하고..
 
이후 왕위를 이은 차남은
또 다른데로 수도를 옮기며
시기리야를 승려들에게 내어 주고
난 뒤 수도원으로 사용했다한다.


그 후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
19세기에 와서
영국인 탐험가에게 발견이 되었다.
 
캄보디아랑 좀 비슷한 느낌이다. 
 

 
빨리 안오나
이 저질체력아.
 
하는 남의 편 잔소리를 들으면서
겨우 겨우 계단을 올라갔다.
 
벌써부터
스리랑카 나랑 안맞는 느낌이다. 
 

 
겨우겨우
시기리야 사자 바위 도착.
 
저 바위 꼭대기에 가엾은
카사파 왕이 지은 궁전 터들이 있다.
 
근데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미 체력 방전이라
입구에서 멍때리는중..
 

 
 
그런데 갑자기 웬 사람들이
바위에서 내려왔다.
 
뒤에 카메라 기자들이
우르르 따라 다니는 걸 보니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삘이다.
 
아래위로 흰색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제일 높은 사람 같은데
서양 여자 둘과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옆에 까만 바지 입은
보좌관 처럼 보이는 분 한테
저 할아버지 누구냐고 물어봤다.
 
스리랑카 관광부 장관이란다.
 
새벽에 바위위에 올라가서
일출을 보고 오셨다나? 
 
어디서 섭외 한듯한
서양인 여행자들을 데리고 다니며
이리저리 찍는걸 보니
관광산업을 홍보할 목적인듯 했다. 
 
스리랑카는 제조업이 전무한 나라라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코로나에다 경제파탄 에다
시위때문에 관광업이 붕괴 직전이었으니...
 
장관이 저렇게 나설만도 했다.
 
게다가 전력 사정도
인도보다 훨씬 열악해
간헐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데
관광지 숙소 만큼은
24시간 전기가 들어왔다.
 
우리는 보좌관 아저씨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한숨 돌리고
바위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1220계단을
올라온 보람이 있구먼.
 
뷰가 예술이다.
 
왜 일출,일몰 명소인지 알것 같다.
 

 
카사파 왕은
예술감각이 뛰었났다는데
바위 꼭대기위에다
성벽이나 주거지를 만드는
발상 자체가 참신하다.
 
이걸 만드는 사람들은 죽어낫겠지만.
 

 

이게 다 집터가 아니었을까.

 
 

 
사방 어딜 둘러봐도
다 정글 일세.
 
다른 사진들 보면
바위 위 에 관광객들이
미어터지던데 역시 아침일찍 오길 잘했다. 
 

 
바위 꼭대기에
사람이 어떻게 사냐 싶었는데
저수지와 수로가 있었다.
 
있을건 다 있었네. 
 

 
내려가는 길에 원숭이들을 만났는데
스리랑카 원숭이들은
인도랑 다르게 애들이 작고 순한 편이었다.
 
인도에선 개보다 무서운게
원숭이 였는데 말이다. 
 
 

 
내려가는데
남편이 서둘러야 한다고 재촉했다.
 
왜? 했더니
숙소 조식시간 맞춰야 한다나?
 
9시 까지가 조식시간이라고
그 시간안에 숙소 도착을 해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경보로 걷기 시작했다.
 

 
그래서 코브라 바위랑
압살라 벽화 하나도 못보고
열심히 걸어와야했다. 
 
사실 큰 호텔도 아니고
게하 수준의 작은 숙소인데
그깟 밥을 안해 줄까.
 
싶었지만 융통성이 없으므로
그냥 열심히 걸어갔다. 
 

 
결론은
식사시간 넘겨도 밥을 주긴했다.
 
빵쪼가리에
오믈렛 과일 몇조각이 다였지만..
 
조식에 너무 목숨 걸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