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2017·5-독일 서북부지역

6일차)브레멘(Bremen)-음악대의 도시로~

이치핏 2018. 2. 4. 18:57



함부르크에서 1시간 10분 정도 걸려서 브레멘(Bremen)에 도착!! 


당나귀,멍멍이,고양이,닭 이 나오는 동화 브레멘의 음악대로 유명한 도시이다.






브레멘에서는 1박만 할 예정이라 호텔 바로 앞에 숙소를 잡았다. 


우리의 숙소 호텔 암 힐만플라츠 누마1. 


보는 순간 무슨 여인숙 인줄 알았다. 


짐도 들고 3층 까지 올라가야 했는데 내짐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지만

 힘센 독일여인네들이 친절하게 옮겨다 주었다. 


방은 코딱지 만했지만 맞은편 호텔에서 먹을 수 있는 조식 쿠폰을 주었다. 





우리가 거의 오후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호텔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바로 구시가지로 가보기로 했다.


 어차피 저녁도 먹어야 하니깐.. 


구시가지로 가는길에 이렇게 멋진 공원이 있어 그나마 덜 힘들었다. 





가다가 이렇게 돼지들이랑 나팔부는 남자의 동상이 나오면 제대로 구시가지에 찾아온 것이다. 


헤르덴토어(Herdentor) 라고 하는데 예전에 성문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지금은 문이나 성벽 따윈 없다. 


여기서 부터 구시가지가 시작된다. 




여느 구시가지와 마찬가지로 상점 거리가 쫙 이어져 있고 계속 걸어가다보면..






성모교회(Unser Lieben Frauen Kirche) 라는 고딕양식의 교회가 나오고..



브레멘 마르크트 광장(Bremen Marktplatz) 가 나왔다. 


왼쪽에 있는건 시청건물이고 오른쪽은 성 페트리 대성당(St.Petri Dom)


그전에 갔던 도시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정말 제대로 중세 유럽건물 같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일단 배부터 채우고~


슈베린에서도 마셨지만 그래도  브레멘에 왔으니 

브레멘 맥주 백스(Becks) 를 마셔야지!! 


의외로 음식도 맥주도 다 맛있다. 


치즈 범벅 되어있는 그럼음식들보다 백배 나았다. 




시청 정면을 바라보고 왼쪽 모퉁이를 돌면 나오는 브레멘의 음악대(Die Bremer Stadtmusikanten) 동상. 



우리가 갔을때도 할머니들이 당나귀 다리랑 입을 만지면서 머라고 소원을 빌고 있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만져댔으면 만진부분만 반질바질하다. ㅎㅎㅎ



옛날 어떤 남자가 당나귀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이 당나귀는 오랜 세월 동안 곡식자루들을 지고 방앗간으로 꾸준히 날랐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당나귀는 쇠약해져 점점 쓸모없게 된다. 주인은 당나귀에게 먹을 것을 줘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생각에 빠진다. 당나귀는 자기의 운명을 눈치 챈다. 마침 브레멘 음악대장이 단원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은 당나귀는 음악단원에 지원하기 위해 집을 떠난다.

브레멘으로 가는 길에 당나귀는 노래를 잘하고 싶은 수탉, 입 냄새가 심한 개, 쥐를 잡지 않았다고 쫓겨난 고양이를 만난다. 이들은 브레멘 음악대원이 되자는 당나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친구가 되어 함께 길을 떠난다. 브레멘에 도착하기 하루 전날, 그들은 어느 숲 속에서 하룻밤을 묵어야만 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도둑들이 살고 있는 집 한 채를 발견한다. 그들은 도둑들을 놀래켜서 도망가게 한 후 그 집을 숙소로 사용한다. 한 밤중에 도망갔던 도둑들 중의 한 명이 그 집에 들어갈 수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왔으나 이들은 지혜와 재치로 다시금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쫓아버린다. 브레멘 음악가들은 그 집이 매우 마음에 들었으므로 계속 그 집에서 행복하게 산다.


그림 형제가 발간한 『어린이와 가정 동화』의 1819년 제2판에 실린 동화이다. 독일 도시 브레멘의 음악대는 원래 14세기부터 있었으며 축제 때마다 음악을 연주했다고 한다. 이 동화에는 네 마리의 동물, 즉 수탉, 고양이, 개 그리고 당나귀가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늙어서 주인에게 쓸모없어진 나머지 곧 죽을 운명이다. 하지만 이들은 탈출하는데 성공하고 우연히 함께 만나서 브레멘 음악대원이 되고자 한다. 고난과 역경을 뚫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서 어떠한 난관도 극복할 수 있다는 훈훈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동화의 주인공들은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나이가 들고 쇠약해져서 쓸모없게 되어버린 하인이나 머슴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층계급의 노동력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다가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가차 없이 저버리는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을 동물의 의인화 방식을 통해 풍자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브레멘 음악대 [Die Bremer Stadtmusikanten]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독일문학, 2013. 11., 인문과교양)




광장 한가운데에는 장승처럼 떡하니 서있는 동상이 있었으니..


왜 프랑스 사람이 여기에??


도시를 수호하는 성인인 롤랜드(Roland)의 동상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기사도 문학이며 영웅서사시 

롤랑의 노래(La Chanson de Roland)의 주인공인 그 롤랜드이다. 


아마 용맹한 관우장군을 동양권에서 수호신으로 모시는것처럼 

이동네에서는 롤랑 또는 롤랜드를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듯 했다. 


롤랑의 노래

구분문학작품

프랑스에서는 남부의 연애 시인 트루바두르(troubadour)에 대하여 북부의 음유시인을 트루베르(trouvére)라 하며, 그 문학은 샤를마뉴(카를) 대제를 중심적 영웅으로 하는 계열을 비롯해 여러 계열로 분류할 수 있으나 사라센인과의 전투를 주제로 하는 것이 현저하다. 11세기 말 또는 12세기 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롤랑의 노래(LaChanson de Roland)〉는 현존하는 무훈시 중 최고() 최대의 걸작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봉건 제도의 이상인 기사의 영웅적인 행위를 예찬하기 위해 씌어진 서사시이다.

8세기 말경, 프랑스 왕 샤를마뉴는 스페인에 주둔하고 있는 사라센 사람들과 전쟁을 벌인지 7년째가 되었다. 사라고스의 회회교왕 마르실은 도저히 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여 복종하기를 맹세하며 금은 보석을 보내어 프랑스에 충성을 서약했다. 용사 롤랑은 이 신청을 거절하여 뿌리째 정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가느롱은 그 말에 반대하여 평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엇갈린 주장을 했다. 그리고 그 평화안이 샤를마뉴 대왕에 의해 채택되었다.

그 평화 조약의 사자로 마땅히 가야 할 사람은 가느롱이라고 롤랑은 지명했다. 그러나 그 사자의 역할이란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가느롱은 화가 났지만, 그 명을 받아들여 롤랑에게 복수를 맹세하면서 사라고스를 향해 떠나게 되었다. 사명을 완수한 가느롱은 마르실 왕과 한 패가 되어 프랑스군이 귀국하는 도중 불의의 습격을 가하기로 약속하고 돌아왔다. 이러한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는 프랑스군은 롤랑에게 1만 명을 주어 후위를 지키게 하고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다.

산봉우리가 높고 골짜기가 어두컴컴한 외진 곳에 이르게 되자, 회회교의 군사들은 구름떼처럼 몰려오는 것이었다. 첩첩산중인 피레네 산맥이라 더 도망할 것도 없었다. 롤랑의 친구인 오리비에는 뿔피리를 불어 샤를마뉴 대왕에게 알리라고 했으나 롤랑은 그 말을 거절하고 자기 혼자의 힘으로 적과 싸우리라 결심했다. 전투는 시작되었다.

프랑스군은 힘껏 잘 싸웠으나 전사자의 숫자는 늘어날 뿐이었다. 남은 병력이란 이제 겨우 60명뿐, 그제서야 롤랑은 뿔피리를 불어 샤를마뉴 대왕을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원군이 오는 낌새를 알아챈 사라센군은 도망가지만, 홀로 남은 롤랑도 끝내는 승리자로서 또한 크리스천의 순교자로서 숨지고 만 것이었다.

샤를마뉴 대왕이 롱스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군이 전멸한 후였다. 대왕은 사랑하는 부하들의 죽음을 탄식한 뒤에 이교도들을 추적하여 그들을 죽이기도 하고 또는 에블 강에 빠져 죽게도 했다. 그리고 난 뒤 롱스보로 돌아와 전사들을 정중하게 매장했다. 반역자인 가느롱은 능지처참을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롤랑의 노래 (세계문학사 작은사전, 2002. 4. 1., 가람기획)



시청옆에 있는 성페트리 대성당(St.Petri Dom) 

문도 닫혀 있는데다 김양 때문에 들어가는걸 포기.

죽어도 성당안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김양땜에 계속 혼자만 성당에 들어가기도 뭣해 겉에서만 보는게 아쉬웠는데 김양은 여기서도 같은 교인을 만났다. 도시마다 같은 교인을 만났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김양은 만나는 형제자매들 마다 말도 안통하지만 반갑다고 인사를 하고 사진도 찍고 그랬다. 뭐 그건 좋았다. 

이인간이 한다는 소리가 성당앞에서 저렇게 당당하게 전교를 하는게 자랑스럽다는 거였다. 저런 거짓종교는 사라져야 한다면서. 내가 아무리 날라리 신자지만 엄연히 천주교 신자인데 정말 어이가 없었다. 

" 야!! 니가 그런식으로 말하면 안되지. 남의 종교를 가지고 무슨 소릴 하는거야!!"

순간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자칫 종교땜에 싸움날뻔 했다. 김양도 아차 싶었는지 갑자기 급 화제를 돌리고 다른 이야기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난 속으로 결심했다. 다신 이 친구와 유럽여행은 하지 않기로...


광장에서만 있을수 없어 샛길로 들어가 보았다. 



샛길로 들어서니 멋진 황금부조 간판이 나왔다. 

여기가 뵈트허거리(Böttcherstraße)인데 골목마다 식당이나 기념품 가게 같은게 모여있었다.

 또 이런걸 구경하는게 여자들의 큰 즐거움이지. 

그런데 저녁 6시 정도인데도 가게들이 문을 닫을려는 분위기였다. 



기념품인데 조잡하지가 않다.

하나같이 퀄리티가 있는 공예품 들이었다. 

물론 가격도 만만치 않음. 


이거 모형 있음 하나 사가면 좋을텐데 쇼핑몰은 이미 폐점이었다.

 진짜 이동네 가게 빨리 닫는구나. 


멋진건물들을 구경하면서 쭉쭉 내려가 보았다. 

무슨 놀이동산내에 있는 거 같은 예쁜 거리가 또 나왔다.

 슈노어 지구(Schnoorviertel) 라고 17세기에 형성된 거리라고 한다. 

지금은 다시 새단장을 한듯했다. 


여기 기념품 가게들은 다 6시 칼퇴근인가 보다.

7시쯤 갔더니 대부분의 상점이 이미 문을 닫았다. 

딱 한군데 문을 아직 안닫은데가 있어서 티셔츠 두어장을 살 수 있었다. 


이때서야 시간계산을 잘못했구나 싶었다. 

차라리 이날 아침 일찍 당일치기로 브레멘 왔다가 함부르크로 돌아간 후 

다음날 뒤셀도르프로 넘어가기전에 함부르크 미술관으로 갈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점이 다 문을 닫은 예쁜거리는 정말 그림의 떡이었다. 


지르고 싶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