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국내/전북

정읍- 김동수 가옥 & 무성서원.

이치핏 2014. 6. 25. 22:41

처음부터 이곳을 알고 찾아온 건 아니었다. 원래 운전을 하다고 지도를 보고 주변에 이런게 있네? 싶으면 들려본다. 변산반도에 놀러왔다가 나 혼자만 정읍역에서 기차를 타고 돌아가야 했으므로 정읍역으로 가기전에 들린 곳이 김동수 가옥과 무성서원이었다.

 

정읍 김동수씨 가옥(중요민속문화재 26 )

 

김동수의 6대 할아버지인 김명관이 조선 정조 8년(1784)에 세운 집이다. 뒷쪽으로 창하산이 있고 앞쪽에는 동진강 상류가 흐르는 지역에 자리잡고 있어 풍수지리에서 명당이라 말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이루고 있다.

 

건물들은 행랑채·사랑채·안행랑채·안채·별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행랑마당과 바깥행랑채가 있고 바깥행랑의 동남쪽에 있는 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와 문간채가 있다.

 

사랑채 서쪽으로 'ㄷ'자형의 안행랑채를 배치하였는데 그 앞쪽으로 'ㄷ'자 평면을 가진 안채가 있다. 안채는 좌우 대칭을 이루게 지어 좌우 돌출된 부분에 부엌을 배치하고 있는 특이한 평면을 갖추고 있다. 안채의 서남쪽에 있는 안사랑채는 김명관이 본채를 지을 때 일꾼들이 기거했던 곳이라고 한다.

 

소박한 구조와 건축가의 독창성, 조선후기 사대부 가옥의 중후한 모습을 대체로 원형대로 잘 유지하고 있어 건축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좋은 연구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출처- 다음 '문화유산' 카테고리

 

 

 

가이드나 문화해설사가 없으므로 진지하게 설명서를 읽어주시고..이 집을 지은 김동수씨 6대조 김명관이 후손들에게 여기서 떠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그 후손들은 이집 바로 옆에 살면서 이집을 관리 하고 있다. 하긴 그 유명한 아흔아홉간 고래등 같은 기와집인데 나라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1790년에 지은 이후 그상태 그대로 개보수를 하지않고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가옥이기도 하다.

 

 

 

행랑채인데 관리를 정말 잘 한거 같다.

 

 

 

 

 

 

 

ㄷ자형의 안채. 원래 안채가 무슨 모양이었더라?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마주보고 사는 형태였는데 대등한 관계를 상징하는 거라나?

 

 

 

방구경 하다가 왠지 내가 마님이 된듯한 착각에 인증샷을 하나 찍었다. 그런데 내가나오는걸 유심히 보던 4살쯤 되어보이는 꼬마숙녀가 나에게 쪼르르 와서는 " 안녕하세요" 하고 90도로 배꼽인사를 하는거였다. 그뒤로 나를 신가한듯이 계속 쳐다봤는데 알고보니 이꼬마 내가 방에서 쑥 나오자 나를 이집에서 사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신기하게 생겼니?

 

 

 

명문가이니 역시 제실은 당연히 있어야지. 아마 제사를 지내는 날이며 이 썰렁한 고택도 종손들과 분가한 지손들로 북적부적하겠지? 그리고 이날이 마을 잔칫날이 되지 않을까?

 

 

 

정읍 무성서원 (사적166)

 

신라후기의 학자였던 최치원(857∼?)과 조선 중종(재위 1506∼1544)때 관리였던 신잠(申潛)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서원으로, 교육기능과 제사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다.

 

원래는 태산서원이라 하던 것을 숙종 22년(1696)에 임금으로 부터 이름을 받아 무성서원이라 하게 되었다. 앞에는 공부하는 공간을 두고, 뒤에는 제사 지내는 사당을 배치한 전학후묘의 형식이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사당, 현가루, 동·서재, 비각, 명륜당 등이 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로 성종 15년(1484)에 세웠고, 문루인 현가루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2칸·옆면 2칸의 팔작지붕 집이다.

 

이곳에는 성종 17년(1486) 이후의 봉심안, 강안, 심원록, 원규 등의 귀중한 서원자료가 보존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남아있던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무성서원 → 정읍 무성서원)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출처- 다음 '문화유산' 카테고리

 

 

 

 

 

 

조선시대 영,호남 선비들의 문화를 대표하는걸 꼽자면 영남은 서원 호남은 정자 문화가 발달했다. 그런데 전라도 지방에 서원이라니? 그것도 대원군이 서원철폐할때 사라지지 않고 남은 서원이라니..마침 김동수 가옥 근처에 있어서 한번 들러보았다.

 

 

 

홍살문을 지나면 이렇게 누각이 딸린 문이 나온다. 지붕이 뭔가 심하게 꺾였는데 저게 팔작지붕이다.

 

 

 

(꼭 사진 찍는데 이러는건 뭥미? )

저 세사람 뒤로 바로 보이는 건물이 강당이다. 아마 저기서 유생들이 수업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끼리 이런 추운날씨에 온돌도 안되는 바닥에서 공부를 하다니 참 조상님들 독하다 라고 떠들고 다녔다.

 

 

 

이 태극문 뒤로는 고운 최치원 선생을 비롯한 일곱명의 학자를 모신 사우다.(사당을 말하는거겠지).건물이 일자로 죽 이어있는 구조였다.  왜 여기 학생들이 머문 기숙사가 안보일까 했는데 원래 있었지만 지금은 동재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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