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2014·8 북해도 도동지역

북해도 렌터카 여행) '8/4 일본 최북단 감옥- 아바시리 형무소

이치핏 2014. 10. 5. 20:47

아바시리 형무소로 바로 가자는건 순전히 내 주장이었다.

 

 남편은 감옥같은델 왜 만원돈이나 주고 봐야하냐 했지만 감옥박물관이란건 생전 처음이라 한번즘 보고 싶었다. 

 

아마 아바시리 쪽으로 가는 사람은 여기는 꼭 들리는 필수 코스 일 것이다.

 

일본 최북단 오지에 있는 형무소 치고는 상당히 규모가 큰 편인다.

 

 메이지23년(1890년)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메이지 정부는 북해도를 개척하기로 했는데

혹독한 환경의 북해도를 개척하기 위해 보낸것이 1200명의 죄수와 교도관 173명이었다.

 

주로 중범죄자들을 보냈다고 한다.

 

이때 아바시리의 인구는 겨우 631명이었다.

 

죄수들이 한일은 아사히카와에서 아바시리까지 도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총 228km의 도로를 짓는 동안  산도많고 지형도 험한데다 혹한지역이기까지해서 많은 죄수들이 희생되었다.

 

 

 

하절기에는 해가 빨리 떠서인지 입장이 8시부터다. 입장료는 1080엔.

 

 

 

아바시리 형무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다리를 건너야만 하는데 카가미바시(거울 다리)라는 뜻이다.

 

"맑게 흐르는 물을 거울 삼아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여 바르게 살자" 라는 의미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적어도 여름철에 오면 물을 보면서 반성하기는 힘들거 같다.

 

 

 

다리를 건너면 형무소 정면이 나온다.

 

여기서 티켓을 끊으면 한국어 팜플렛을 나누어 주는데 소개가 참 거창하다.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길에 다다르면 북쪽 대지에 새겨진 사내들의 이야기와 풍파를 이겨낸 건물들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거칠고 혹독한 자연환경에 맞서는 강인한 사내들의 드라마를 지어내려는 듯한 느낌.

 

죄수들에 대한 인권유린이나 그런건 절대 나오지 않았다.

 

돌아보면 미화나 드라마틱한 면을 좀 심하게 강조했구나 하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감옥 내부 지도인데 상당히 넓은 편이었다.

 

천천히 둘러보면 한나절도 보낼 규모였다.

 

 

 

티켓을 끊고 들어가니 또 문이 나왔다.

 

옛날 아바시리 형무소의 진짜 정문을 복원한 것이다.

 

이 문 짓는데만 5년이 걸렸다고 한다.

 

 

 

할아버지 많이 추우실거 같은데 오늘 날씨가 아침부터 푹푹찌는지라 실감이 안나네요..

 

 

 

정문을 통과하니 바로 청사가 나왔다.

 

감옥을 총괄 관리하는 곳인데 소장실이나 사무실들이 여기에 있다.

 

1912년에 세워져 1988년까지 사용되었는데 일본식과 서양식이 절충이 된 건물 양식이라 한다.

 

직원들이 24시간동안 근무를 해야해 밤에도 항상 불이 켜져있는 바람에 '땅끝의 불야성' 이라고 불렸다.

 

 

 

 

 

청사에 들어오자마자 나오는건 접견실.

 

모범수들이 간수 입회하에 가족들과 면회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아저씨 표정이 뭔가 비장하다.

 

" 뭐하러 이번에 사식을 또 넣었어? 그럴 돈 있으면 애한테 먹을거나 더 사주라구."

 

 츤데레처럼 이런 대사를 치고 있을것만 같다.

 

 

 

일반 죄수들은 이렇게 앞이 꽉 막힌 곳에서 목소리로만 면회를 할 수 있었다.

 

 

전옥실.

 

요즘으로 말하면 교도소장실인데 교도소장을 메이지시대때는 전옥이라고 불렀다.

 

전옥은 교도소장 역할 뿐만 아니라 경찰서장,역장,우편국장도 겸임하고 있어 권력이 막강했다.

 

식사도 검사했다고 한다.

 

간이 짜다~ 이러고 있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청사를 나와서 오른쪽으로 슬슬 걸어가니 또다른 문이 나왔다.

 

아바시리 형무소 수문인데 형무소 앞을 흐르던 아바시리 강을 이용해서 필요한 물자를 수송했다.

 

 사람이 아니라 물자가 들고나던 문이었다.

 

그냥 보고 있으면 뱃놀이를 하는 장면 같다.

 

 

 

북해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종종 보게 되는 니포포.

 

북방민족(아이누족이겠지)의 수호신으로 작은 나무아이라는 뜻이다.

 

 

 

아바시리 형무소 내부에는 재판 법정도 있었다.

 

구시로 지방재판소 아바시리 지부 법정 복원동으로 1900년에 생긴 법정으로 일본에서 6번째로 생긴 법정으로

 

1952년에 신청사를 짓느라 해체 되었을때 일부를 양도받아 복원한것이다.

 

 

 

여기는 단독 법정.

 

비교적 최근인 1991년까지 사용되었는데 무전취식이나,절도 같은 가벼운 형벌을 재판하는 곳으로 재판관이

한명이라 단독법정이라고 한다.

 

저 배바지 아저씨는 뭘로 잡혀왔을까? 술마시고 행패부리다 오지 않았을까?

 

 

 

여기는 합의 법정.

 

중죄사건을 다루는 법정으로 재판관이 3명이다.

 

 저여자가 무슨 죄를 지은건 아니고 검사가 저여자에게 증인심문을 하는 장면이다.

 

 " 증인이 방금 설명한대로 그날밤 사건의 범인은 피고가 틀림없습니다." 뭐 이런 장면.

 

 

 

 

왠 창고인가 했더니 미소 창고였다.

 

그당시 이동네는 오지중의 오지라 모든 식량을 죄수들이 자급자족해야만 했다.

 

그래서 간장이나 된장도 직접 여기서 제조하고 저장해서 먹었다.

 

 

 

 

 

 

 

 

 

 

 

아니 왜 멀쩡한 건물 놔두고 이런데서 주무시나.했더니 이건물은 휴박소라고

 

 죄수들이 아사히카와에서 아바시리까지 도로 건설을 위한 강제노동에 동원 되었을때 사용한 임시 숙소라고 한다.

 

유목민 처럼 이동할때마다 조립해서 사용했다고 움직이는 감옥이라 불렸다.

 

 이죄수들은 하루에 겨우 4~5시간 잘 수 있었는데 간수들이 기상을 시킬때 죄수들이 베고 있던

통나무 가장자리를 두들겼다.

 

밥먹는거 보니 영양실조나 동사등등으로 희생자가 많이도 나왔을거 같은데 거기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뭔가 갈길이 먼거 같은데 덥다..마이 덥다..

 

이 춥다는 북해도에서 여름에 쪄죽은 사람도 나오지 않았을까?

 

 

 

 

경운고라고 농기구나 비료 그리고 수확한 작물을 보관하던 곳이다.

 

 

 

감옥 역사관 건물. 에어컨 바람이라도 쐴까해서 얼른 들어갔다.

 

 

1층에는 현재의 아바시리 형무소를 재현해 놓았다.

 

각 방당 정원은 6명이라고

 

 

 확실히 시설이 좋아보인다.

 

 

 

건물 다른쪽에는 죄수체험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식으로 그당시 강제노역때 끌려다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쇳덩어리 무게 장난아님. 저걸 차고 다니다니..ㅠ.ㅠ)

 

 

 

아까 휴박소에서 본 침대.

 

베고 있는데 저 통나무를 두들기면 뇌에서 부터 깊은 진동이 오는거 같다.

 

 

또3면으로 된 대형스크린에 짤막한 영화가 상영하고 있는데 제목이 '붉은 죄수들의 숲' 이라고 한다.

 

죄수들이 입은 옷이 붉은색이라고.

 

120년전에 북해도 중앙간선도로를 건설할때 모습인데 각 나라 언어로 상영이 되었다.

 

근데 하필 우리가 갔을때는 일본어 상영이라 뭔말인지는 잘 모르겠고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는 숲속에서 죄수들이 뭐라뭐라 절규를 하면서 서로를 다독거리는 그런 내용 같았다.

 

 

 

 

 

죄수들의 절규를 뒤로하고 역사박물관을 나오니 뭔가 평화롭다.

 

1896년에 생긴 후타미가오카 농장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자급자족한 식량을 죄수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고 (안내문에 적혀있다.)

 

 웰빙스럽긴 한데 많이 부실해 보인다.

 

 

형무소 안엔 교회당이 몇군데 보였다.

 

교회당이라고 꼭 목사님만 오는건 아니고 승려들이나 지역 유지들이 와서 죄수들을 위로했다.

 

 

 

새가 빙글빙글 돌고 있길래 무슨 장면인가 했는데..

 

예전에 이곳 형무소는 너무 오지에 떨어져 있는지라 1937년  전화가 개통되기전에는 비상연락수단이 바로

비둘기였다고 한다.

 

만국공통의 통신수단 같다.

 

 

 

 

 

여기 죄수들은 농사짓고 노동일을 하고 그 바쁜 와중에 신사도 지었다.

 

 아바시리 후타미고한 신사라고 1913년 후타미가오카 농장에서 일하던 죄수가 지었다.

 

 뭔가 위안거리를 찾고 싶어 조그만 신사를 세웠겠지...

 

 

 

 

관내에서 가장 큰 건물 오익방사상 단층 옥사.말그대로 교도소 본건물이다. .

 

벨기에의 루벤감옥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한다. 

 

중앙에 감시대가 있고 5채의 옥사들이 방사형으로 뻗어져 있다.

 

그래서 한명의 간수가 효율적으로 감시를 할 수 있었다.

 

총 226채의 감방과 독방으로 구성되어있고 1912년에 세워져 1984년까지 사용했다.

 

 

밖에도 방번호가 다 표시 되어있다.

 

 

 

중앙에 이렇게 감시소가 있고..

 

 

 

 

위에 번호 순대로 다섯개의 방향으로 옥사 복도가 쫙~펼쳐져 있었다.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 그런지 음침한 느낌이었다.

 

감시소에서 혼자 야근하고 있음 뭔일이 터질것만 같았다.

 

 

 

너무 넓어서 음산하달까.

 

진짜 드라마 한편 찍어도 되겠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감옥이라도 인간이 만들었는데 어찌 헛점이 없으리.

 

여기도 전설의 탈옥왕이 있었다.

 

니시카와 토라키치 (西川寅吉)와 시라토리 요시에 (白鳥由栄) 라는 두 남자인데..

 

토라키치는 별명이 '다섯마디 못'으로 다섯마디 못으로 열쇠를 따고 자른 죄수들의

 

 오줌으로 적신 수의를 담에 내리쳐 그 흡착력으로 담을 넘어 탈옥을 했다고 한다.

 

것도 무려 6번이나 탈옥을 했다고.

 

나중에는 반성하고 형기를 마친후 아들 집에서 눈을 감았다.

 

요시에는 네번의 탈옥을 시도했는데 미소시루를 창살에 부어 그 염분으로 창살을

부식시켜 그걸 뜯어낸 다음 탈옥을 했다.

 

힘도 무쟈게 세서 수갑도 다 부숴 버렸다고.

 

역시 나중엔 반성하고 모범수로 지내다 가출소를 했다고 한다.

 

 

 

정말 없는게 없는 감옥이다.

 

공중목욕탕까지..

 

하지만 1000명이 넘는 죄수들이 한꺼번에 목욕을 하려다 보니 제한이 많은데 6~9월 여름에는 월 5회,

나머지는 월 1회 정도만 목욕을 할수 있고 그나마 시간도 15분이었다.

 

 

 

마당 한쪽에 왠 창고 같은 건물이 몇개 있길래 뭔가 하고 봤더니 독방이었다.

 

문제를 일으키는 죄수를 여기다 가둬두고 식사도 줄인다고.

 

문을 닫아버리면 완전히 암흑 그자체여서 오래있다간 공황장애가 오기 딱일거 같았다.

 

 

 

 

자매품으로 징벌방도 있다.

 

 가건물 처럼 지은건데 마찬가지로 문을 닫으면 완전 암실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불쌍한 표정이구나~

 

 

 

구시로 집치감 아바시리 수인외역소 정문.

 

원래는 감옥정문은 돌이나 벽돌로 만들어야 했지만 아무래도 여기 여건이 열악한지라 처음 생겼을때는

이런 목조로 된 문이었다고 한다.

 

 

 

왠 신사 같은데 또 있네 하고 들어갔다.

 

 

 

교회당이라고 되어있는 건물인데 교회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교회가 아니라

승려나 목사 등의 종교인들이 와서 죄수들을 갱생하는걸 말한다.

 

1912년에 죄수들이 직접 만든 건물로 기와도 직접 굽고 산에서 나무도 베어와 만들었다.

 

신불의 혼이 머문다는 종교적으로 신성한 건물이라 특히 심혈을 기울여 지었다고 한다.

 

 

 

건물 내부는 교회같지만 안에는 이렇게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이렇게 해서 한바퀴를 다 돌게 되었다.

 

 이 철문은 후타미가오카 농장의 정문을 재현해 만들어서 지금은 박물관 입구로 사용하고 있다.

 

 

 

 

 

감옥치고는 주변경관이 아주 멋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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